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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달린 비

2024. 4. 4. – 2024. 5. 5.

아트홀 (B1)

혀 달린 비

아트선재센터는 세 명의 여성주의 시인 세실리아 비쿠냐, 차학경, 김언희에게 영감을 받은 극장형 전시 <혀 달린 비>를 4월 4일부터 5월 5일까지 아트홀에서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세대를 가로질러 기억의 통로를 뚫어내고, 트라우마와 침묵으로부터 도주선을 발생시키는 시적 발화의 힘을 주목합니다.

극장에 들어서면 칠레 출신 시인이자 미술가 비쿠냐의 비통한 애도가 울려 퍼집니다. 비쿠냐의 <소리로 꿈꾼 비:차학경에 대한 경의(Rain Dreamed by Sound: Homage to Theresa Hak Kyung Cha)>는 약 20분간 진행되는 사운드 설치 작업으로 차학경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쿠냐의 헌정 시이자 노래입니다. 차학경은 어린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내 여성소수인종으로서 언어적 분열과 회복의 과정을 글쓰기와 퍼포먼스,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차학경은 시이자 소설인 『딕테(Dictee)』를 발표하고 미국 문화예술계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어처구니없게도 무참히 강간 살해 당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31세였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비쿠냐의 ‘비’는 젠더 폭력의 잔존하는 악몽에 파동을 일으키고, 고통 받는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의 상징으로 제시됩니다. 멈출 수 없는 비와 같이 비쿠냐는 차학경의 삶과 예술에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칠레와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비쿠냐와 차학경은 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페미니즘, 샤머니즘, 모계적 전통과의 연결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비쿠냐와 차학경 사이의 대화는 세대를 넘어 나미라, 제시 천, 차연서로 연결됩니다. 이들은 애도, 시적 발화의 힘, 그리고 언어의 변혁적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비쿠냐의 사운드 작품이 끝나면 무대 뒤 백스테이지에 설치된 나미라의 비디오 작업 <테트라포비아(TETRAPHOBIA)>가 상연됩니다. 이 작업은 차학경의 미완성 필름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White Dust from Mongolia)>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나미라의 필름에서 텅 빈 영화관의 관객석을 타고 넘어 무대 위로 등장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차학경이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를 위해 마지막 장면으로 구상한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나미라의 목표는 차학경이 끝내지 못한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미라는 차학경이 실현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방향 가운데 몇 가지를 파편적으로 선택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의 잠재성을 기리고 있습니다. 차학경의 미완성 작품은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버클리 미술관의 협조로 한국에서 최초로 소개될 예정인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는 차학경이 1980년 한국에서 촬영한 필름입니다.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하고 유작이 된 이 필름은 일본 식민 통치를 피해 만주로 건너간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만주에 사는 실어증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차학경이 남긴 영상들은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의 흔적들이며, 우리는 이미지의 얼개 사이로 그녀가 상상했던 장면들을 함께 상상해야 합니다. 

비쿠냐의 사운드 작품과 나미라의 비디오 작품 사이에 설치된 제시 천의 <탈언어화의 악보(천지문 and Cosmos, no. 042823)>는 드로잉 설치 작업입니다. 작가는 지배적 언어인 영어의 의미체계를 분열시키고 추상화하기 위해 스텐실(stencil) 기법을 이용해 로마 알파벳을 특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추상적 언어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또한 천장에 매달린 네 개의 프레임의 형태로 인해 중앙에 원 형태의 빈 공간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네거티브 형상과 추상 악보는 한국 민속춤과 소리의 재해석을 통해 활성화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 전달의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언어의 한계점에서 마주하는 것은 언어와 몸의 분리불가능성입니다 . 김언희 시인의 표현에서 빌린 “혀 달린”이라는 시적 표현은 신체기관이자 언어를 발생시키는 통로로서 혀의 이중적 존재성을 강조하고, 시 언어에 내재한 몸/감각을 발화시키는 트리거로 작동합니다.

차연서의 <축제>는 법의 부검 자료에서 바라본 무연고의 몸을 가위질로 필사하는 닥종이 콜라주입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남겨진 채색된 닥종이를 잘라  유기된 몸을 그리는 창작 과정이 마치 아버지의 몸을 죽은 자들에게 공양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일종의 천도재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차연서가 만들어 내는 제의의 공간은 이 전시를 관통하며, 예술이 죽음과 상실에 대한 치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혀 달린 비》는 시적 발화의 치유의 힘과 혀의 저항의 힘이 결합하여 생성되는 제의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멈출 수 없는 비와 같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목소리가 없었던 자들의 몸/감각을 기억해 내고자 합니다. 세실리아 비쿠냐, 차학경, 나미라, 제시 천, 차연서가 보여주는 세대를 초월한 대화와 소통의 통로에서 우리는 이러한 기억의 힘을 발견합니다.

참여작가
세실리아 비쿠냐(b. 1948)
세실리아 비쿠냐 (Cecilia Vicuña)는 뉴욕과 산티아고에서 활동하는 작가이자 시인이다.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이후 칠레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던 배경에 영향받아 덧없음에 대한 정서 그리고 칠레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경심과 이를 지키려는 열망을 작업으로 드러냈다. 그녀의 작업들은 에코 페미니즘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는데, 특히 생태계 파괴, 문화 동질화, 경제적 격차 등 현대 사회의 주요 쟁점을 반영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사회적 약자들을 배척하는 현상에 대해 비판한다. 제59회 베니스비엔날레(2022) 황금사자상과 스페인 문화부가 스페인과 이베로 아메리카 국가 출신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권위있는 미술상인 벨라스케스시각예술상(2019)을 수상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2022), 런던 테이트모던(2022), 노스마이애미현대미술관(2019), 뉴욕 브루클린뮤지엄(2018), 보스턴미술관(2018), 뉴올리언스현대미술센터(2017) 등 다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국내에서는 리만머핀 서울(2021), 제13회 광주비엔날레(2021) 등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차연서(b.1997)
차연서는 평면 연작 <축제>를 통해 무연고자들, 벌레들, 시어들을 자르고 그리며 그들이 매달릴 자리를 마련한다. 끝장난 다음에도 끝나지 않는 끝, 그 안에 허물어진 마침표들을 응시하는 과정은 저리고 가위눌리고 열리는 몸(들)을 돌본다. 그동안 몸과 컴퓨터가 연루된 작업을 기획하고 연출하고 개발하며 온라인 개인전 《이 기막힌 잠》, 에너지후이쉬게임즈(2023), 협력적 개인전 《Every mosquito feels the same (모든 모기들도 똑같이 느낄 거야)》(TINC, 2022), 라이브 퍼포먼스 《Mosquitolarvajuice (모스키토라바쥬스)》(레스601선유, 2022), 그리고 게임 《3 Households (쓰리하우스홀즈)》(Steam, 2022)를 발표했다.

제시 천(b. 1984)
제시 천은 뉴욕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단편 영화, 드로잉, 조각 및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의미, 시간 그리고 번역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다른 해석 방법과 철학을 환기시키는 언어에 대해 탐구한다. LA 커먼웰스앤 카운슬(2024),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23), 런던 화이트채플갤러리(2023), 토론토현대미술관(2021,2020), 백남준아트센터(2020), 뉴욕 조각센터(2020), 뉴욕 드로잉센터(2019) 등 여러 지역에서 작품이 소개되었으며 서울시립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도서관, 워싱턴 D.C. 스미소니언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도서관 등 주요 기관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나미라(b. 1982)
나미라는 인식의 가장자리에서 작업한다. 작가의 영상, 영화, 그리고 조각은 애니미즘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제작 장치를 부자연스럽게 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건축과 현상학에서 착안하여, 나미라의 현장 반응형 설치작품은 표현을 넘어서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투손 현대미술관(2023), LA 폴소토(2023), 비엔나 크로이넬슨(2023), 뉴욕 컴퍼니갤러리(2022), 미네소타 미드웨이현대미술관(2022)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LA현대미술관(2024), 쿤스트할레취리히(2024), 제 60회 베니스비엔날레(2024), 리얼DMZ프로젝트(2023), 휘트니비엔날레(2022)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차학경(1951-1982)
차학경은 한국에서 태어난 재미 예술가로 1982년 31세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산과 상실에 관한 주제로 시, 퍼포먼스, 사진, 영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녀의 작업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여러 종교적 관점이 깃든 문화적이고 상징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아시아계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은 그녀의 작품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데, 특히 반복, 조작, 축소, 고립을 통한 언어 실험을 통해 언어가 어떻게 불안정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지 탐구했다. 차학경이 남긴 작업은 후대 아시아계 작가와 예술가, 연구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은 40년만에 미국 뉴욕타임스 뒤늦은 부고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휘트니비엔날레(2022), 뉴욕 아티스트스페이스(2020), 브롱크스미술관(2003), 휘트니미술관(1993) 등에서 작품이 전시되었으며,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UC버클리미술관 & 태평양 영화 보관소에서 회고전이 개최된 후 세계 다섯 개 도시에서 순회 된 바 있다.

[ASJC 리딩리스트] 《혀 달린 비》 읽기 모임
1. 차학경 『딕테』
텍스트 소개: 김지승
2024. 3. 14. (목) 19:00–20:30

2. 캐시 박 홍 『마이너 필링스』
텍스트 소개: 성정혜
2024. 3. 21. (목) 19:00–20:30

3. 김언희 『보고 싶은 오빠』, 『트렁크』,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 등
텍스트 소개: 양효실
2024. 3. 28. (목) 19:00–20:30

4. 안드레아 롱 추 『피메일스』
텍스트 소개: 이연숙
2024. 4. 11. (목) 19:00–20:30

장소: 온라인 (웨비나링크는 추후 공유)
참가비: 회당 1만원 (4회 모두 신청시 3만원)

해당 프로그램은 선착순 모집이 마감되었습니다.

기간
2024. 4. 4. – 2024. 5. 5.
장소
아트홀 (B1)
참여작가
세실리아 비쿠냐, 차연서, 제시 천, 나미라, 차학경
기획

문지윤

진행

남서원

주최

아트선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