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시

2014 아트선재 프로젝트 #3: 걷는 도시_충정로 모던

2014. 11. 14 – 11. 30

아트선재센터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

2014 아트선재 프로젝트 #3: 걷는 도시_충정로 모던

아트선재센터는 2014년도 ‘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 세 번째 프로젝트로 예기 작가의 《걷는 도시_충정로 모던》 을 소개한다.

예기 작가의 《걷는 도시_충정로 모던》 프로젝트는 대도시를 걷는 ‘산책자(散策者) /소요인(逍遙人)’의 일지를 담은 작업이다. 작가에게 이 프로젝트는 ‘구보씨’의 서울 산책의 의의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는 1938년도에 발표된 박태원의 중편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이다). 구보씨는 근대화한 30년대 서울 시내 각 구역을 방문 탐구하며 ‘고현학(考現學)/모더놀로지(modernology)’를 실천하고자 했다 (고고학이 고대인류문화를 대상으로 한다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현학은 현대인의 일상 생활 풍속을 면면이 고찰함으로써 현대의 진상을 탐구한다). 사실 동서양 ‘산책자’의 역사는 깊다. 서양의 보들레르, 제임스 조이스, 발터 벤야민 등은 모두 근대 도시를 산책하며 사색을 펼쳤던 인물들이다.

한편, 《걷는 도시》가 소요인의 프로젝트인 이유는 걷는 것이야 말로 주변 ‘풍경’을 담을 수 있는 행위이며, 또한 ‘걷는다’는 일상의 행위가 인간 활동의 시작이자 기본 척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계 생산과 산업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사회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자동차와 대로 중심의 도시를 발전시켰다면, 오늘날의 도시는 휴먼스케일(human scale)을 고려하고 ‘소요인’을 중심으로 한 걷기 즐거운 도시, 다양한 것들 간에 소통이 가능한 생태적 도시를 고민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라고 작가는 말한다.

일군의 현대 사회학자들이 (앙리 르페브르 외) 사유했던 것처럼, 작가는 도시를 만든 것은 ‘우리’지만 이 일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결국 ‘도시가’ 우리를 만들게 된다고 생각한다. 생겨난 도시는 이렇게 ‘나’의 일상적 삶에 질적으로 개입할 뿐 아니라 사유방식까지도 ‘짓게 된다’. 그러한 차원에서 《걷는 도시_충정로 모던》은 산책자의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나들이 속에서, 그의 ‘발길’이 닿은 지역(territory)에 대한 경험을 담고 도시와 삶에 대한 탐구와 시학(poïesis)으로 나아간다. <사적 지도(personal map)_나만의 충정로 길>은 그러한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는다.

《걷는 도시》프로젝트는 ‘충정로 모던’이란 부제를 가지고 있다. 왜 충정로인가? 무악재에 살고 있는 예기에게 충정로는 일상생활의 구역(territory)이며 도시의 변화 특히 서울의 근-현대화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근접장소이다. 예를 들어, 그곳에 있는 60-70년대 아파트들은 같은 시기 한강 개발을 위해 강변에 세워진 대단위 근린 아파트들과는 매우 다른 성격을 가졌고, 70년대라는 전통과 현대의 ‘전환기’에 도시변화를 담아낸 훌륭한 물적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체로써 충정로에 ‘독자적 색채’ 또한 부여한다. ‘충정로 산책지’에 속한 <미금동서소문아파트>, <금화시민아파트>는 산책지에서의 경험을 표현한 작업이다. 그리고 ‘교남동 산책지’ 시리즈는 작가가 소년기부터 그 앞을 오갔던 충정로와의 접지, 교남동지역의 도시 재개발 사업을 지켜보며 만든 작업으로, 6개월에 걸친 개발구역의 내부의 변화를 담고 있다.

‘장소성’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는 종종 예기 작가의 머리를 사로잡는다. 근대의 도시개발모델과 서양의 투시도적 원근법의 도입이 없이 이루어진 구 서울은, 수많은 자연발생적 거리들로 이루어져있다. 충정로도 예외가 아니다. 골목길을 거닐며, 작가는 조각난 원근법 형태에 의지해 장소가 주는 강렬한 심리적 인상을 이미지로 재구성하거나(<미금동서소문 아파트>), 사진기를 내려놓고 장소에 뛰어들어 그것과 하나가 된다든지(‘교남동 산책지’ 시리즈), 무용가들의 신체움직임을 빌려오기도 한다(<금화시민아파트>). 이렇게 작가에 의해 제시된 파편적인 자료들은, 근대화의 관찰과 더불어 거대한 현대 서울의 풍경을 파악하는 도시 시학의 근본 자료가 된다.

“모두가 나의 서울 지도와 풍경을 갖게끔 산책에 초대하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 본질적으로 ‘흩어진’ 산책자(散策者)의 발길엔 목적지가 없으며, 따라서 그에겐 방랑, 자유로움, 즉흥성, 우연성, 게으름, 단편성, (어떤 의미의) 관음적 유희, 상상력 등이 따른다. 비디오 작업인 <상암동 미디어 시티>, <충정로 여인>과 사진 작업인 <발눈 Footeyes> 등은 산책자의 그러한 태도를 보여준다. 소요인을 닮은 자유로운 도시. 흥미롭지 않은가?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다수의 <산책자의 자화상>을 선보인다. 작가에게 ‘나-산책자-소요인’이란 누구인가의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관음자-시인 Voyeur-poet>에서 보듯이 그는 이 시대 시인이며, 또한 각양각색의 도시 풍경에 조응한 일종의 만화경이자 (<칼레이도코프 아이즈 Kaleidoscope eyes>), ‘천변만화(千變萬化)풍경(끊임없이 변화하는 풍경)’을 담는 거울이다 (<나의 거울 가면>)(오브제 <천변만화(千變萬化)풍경>). 산책자-거울에 담긴 것은 외부의 것이지만, 그것은 곧 산책자 자신의 ‘천변만화풍경’이기도 하다. 산책자의 의식은 외부를 향해있지만, ‘걷는다’는 행위가 주는 것만큼이나, 그것은 자신의 내부로도 향해있다. 그를 동반하는 거북이는 산책자의 표상이자, 동반자이기도 하다 (<터틀미 Tuttle me>의 예).

대상에 가까이 가고, 또한 멀리 있음으로써, 나-산책자는 도시의 비활성화된 다양한 형태의 물적, 정신적 집적물들을 찾아내고 있다. 이렇게 발견하고 경험한 것들은 이번 전시에서 사진, 동영상, 텍스트, 설치물, 퍼포먼스로 구현된다. 도시가 주는 다채로운 경험은 산책자의 의식과 무의식, 감성적 반응을 다양한 방향으로 이끌며, 매체의 복합적인 표현 또한 낳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예기 (Ieggi KIM, 1965)는 덕성여대 동양화과를 나와, 파리 8대학과 1대학에서 각각 조형예술과 미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서울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아트선재 프로젝트 소개
‘아트선재 프로젝트 스페이스’는 임시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적 시도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아트선재센터 1층 공간을 재정비하여 2014년 하반기에 새롭게 시작된다. 아트선재센터는 카페와 레스토랑 같은 상업 시설 대신 교육 및 프로젝트 공간을 확장하고자 미술관의 퍼블릭 공간인 1층을 건축가의 프로젝트를 통해 변모시켰다. 이에 따라, 2009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아트선재 라운지 프로젝트’의 취지를 계승하면서도 미술관의 열린 공간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라는 특성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토크와 워크숍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욱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기간
2014. 11. 14 - 11. 30
장소
아트선재센터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
참여작가
예기
주관
아트선재센터
기획
김예경
후원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