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2025. 5. 9. – 7. 20.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2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
《홍영인: 다섯 극과 모놀로그》는 원형의 태피스트리와 동물 장난감의 형상을 한 조각들, 그리고 다섯 번의 즉흥 퍼포먼스로 이루어진 <다섯 극>(2024/2025)과 사운드 설치 신작 <우연한 낙원>(2025)으로 구성됩니다. 이번 전시는 가부장적 역사 속에서 주변화된 여성과 동물의 시선으로 제의적 공간을 새롭게 엮어냅니다. 여기서 제의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억눌려 온 기억과 사라진 존재들을 감각적으로 불러내고 재구성하는 행위입니다. 작가는 태피스트리, 오브제, 사운드, 퍼포먼스를 매개로 공동의 몸짓과 감각을 활성화하며, 그 안에서 역사와 현재가 교차하는 또 하나의 시간대를 열어 보입니다.
<다섯 극>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사의 이야기들로부터 출발합니다. 여성의 몸과 노동은 결코 주변적인 존재가 아니었음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영웅 중심의 지배적인 역사 서사에서 배제되어 왔습니다. 기생 출신의 독립운동가 현계옥, 제주에서 반일 투쟁을 이끈 해녀 부춘화,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지도자 신순애 등, 작가는 이들의 서사를 작품 속에 새겨 넣었습니다. 작가가 환기시킨 역사적 장면들은 길이 40미터의 태피스트리에 수놓아져 있으며, 이들의 이야기는 전시 기간 중 다섯 번의 퍼포먼스를 통해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날 예정입니다.
태피스트리의 안쪽 면에 자수 되어 있는 것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상입니다. 이는 작가가 바람, 구름, 태양 등 자연의 요소들이 돌에 새겨져 있는 울주 천전리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형상은 버드나무, 천, 세라믹으로 제작된 조각들 속에서도 되풀이되어 공간 전반에 리드미컬한 시각 언어를 형성합니다. 원형의 태피스트리 주변에는 훌라후프나 고리 던지기처럼 놀이 기구를 연상시키는 조각들이 있습니다. 이 조각들은 작가가 동물원에서 관찰한 행동 풍부화 도구에서 착안해 제작한 것입니다. 전시 기간 중 펼쳐질 다섯 번의 퍼포먼스에서 이 조각들은 악기이자 도구, 그리고 신체의 연장으로 활용됩니다. 퍼포머들은 역사적 장면이 수놓아진 태피스트리에 반응하며, 현재의 감각 속에서 새로운 몸짓을 구성합니다. 퍼포먼스에는 드러머가 함께하며, 태피스트리 하단의 동물 형상의 악보를 따라 즉흥적으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어두운 방에 설치된 <우연한 낙원>은 작가가 직접 작성하고 낭독한 텍스트를 두루미의 목소리로 재생하는 작업입니다. 협업자 오웬 로이드는 작가의 목소리를 13개의 음질로 분석하여 이를 천 개가 넘는 두루미의 울음소리와 연결 짓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거쳐 글을 읽는 작가의 목소리는 다양한 음색과 성조의 두루미 목소리로 변환되며, 이는 마치 작가 목소리가 두루미의 합창으로 재현되는 것에 유사합니다. 작가가 두루미에 주목한 이유는 두루미가 멸종 위기로 상징화된 존재일 뿐 아니라, 무리로 생활하며 항상 복수의 소리를 내는 특성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비무장지대에서 두루미를 처음 마주한 기억을 떠올리고 두루미와 자기 자신, 이 두 존재를 교차시키기를 시도합니다.
이 전시에서 태피스트리, 사운드, 퍼포먼스는 유기적으로 어우러집니다. 홍영인은 선형적 서사와 수직적 위계를 거부하며, 몸짓, 리듬, 소리를 통해 역사가 감각되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장을 제안합니다. 이곳에서 저항의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표면 아래에서 맥동하며, 관람객의 몸과 퍼포먼스를 통해 생성될 에너지와 리듬을 통해 다시 활성화되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퍼포먼스
* 퍼포먼스는 당일 전시 티켓 소지자에 한해 사전 예약 없이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5/8 (목) 오후 6시
5/24 (토) 오후 2시
6/14 (토) 오후 2시
6/28 (토) 오후 2시
7/12 (토) 오후 2시
작가 소개
홍영인 (b. 1972)
홍영인은 태피스트리, 사운드,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다양한 매체와 형식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작업 내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수직적인 위계 구조를 유연하게 허물고, 가장자리로 밀려났던 존재들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개인전으로 《파이브 액츠》(스파이크 아일랜드, 2024), 《동물의 고리》(쿤스트할레 엑스트라 시티, 2022), 《달나라의 장난》(주영한국문화원, 2017), 《6/50 fig-2》(ICA 스튜디오 & 극장, 2015) 등을 개최하였으며, 참여한 주요 단체전으로 제체시온(2024), 창원조각비엔날레(2024),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2024), 부산현대미술관(2023), 아트 타워 미토(2023), 서울시립미술관(2022),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0), 터너컨템포러리(2017) 등이 있다.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11년 김세중 조각상, 2003년 석남 미술상을 수상했다. 홍영인의 작업은 영국 아트 카운슬 컬렉션, 카롤린스카 인스티튜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유승아(아트선재센터 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
아트선재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