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전시

하종현 5975

2025. 2. 14. – 4. 20.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1, 스페이스2

하종현 5975

아트선재센터는 오는 2월 14일부터 4월 20일까지 작가 하종현의 초기 작업(1959–1975)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하종현 5975》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하종현이 다룬 물질과 회화적 기법이 당시 한국의 시대적 맥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전했는지 탐구한다. 하종현의 초기 작업은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에 반응하며, 다양한 재료와 물질성에 대한 실험을 확장해 왔다. 그의 작업은 사회적 현실과 개인적 경험을 재구성하고, 회화의 가능성에 질문하는 실험적 시도로 가득 차 있다.

《하종현 5975》는 1959년 하종현이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현재 그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접합〉 연작을 시작한 1975년까지의 기간을 총 네 시기로 나누어 살펴본다. 먼저 ‘1부: 앵포르멜(1959–1965)’에서는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아 전후의 혼란과 불안, 황폐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작업 시기를 다루고, ‘2부: 도시화와 기하학적 추상(1967–1970)’에서는 가속화된 도시화와 경제성장을 주제 삼은 기하학적 추상 작업과 전통과 현대의 융합 가능성을 탐구한 <탄생> 연작을 선보인다. 전시는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활동을 중심으로 하종현이 펼친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소개하는 ‘3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새로운 미술 운동 시기(1969–1975)’와 그의 대표 연작 <접합>의 초기 작업을 만날 수 있는 ‘4부: 접합—배압법(1974–1975)’으로 이어진다. 하종현의 작업이 전개된 초기 흐름을 따라가는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이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진화했는지 보여준다.

1부: 앵포르멜(1959–1965)
하종현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1950년대 후반, 당시 유럽에 등장해 정형화된 회화의 틀을 깨고 물질성을 강조한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았다. 작가는 앵포르멜을 한국적 맥락에서 재구성하여 전후 한국 사회의 혼란과 상처를 작업에 담아냈다. 두꺼운 물감과 불에 그을린 표면, 어두운 색조를 활용하여 시대적 불안을 화면 위에 구현했다. 이는 전쟁과 사회적 혼란이 남긴 집단적 기억을 재료와 행위를 통해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시도였다. 이러한 초기 작업은 이후 하종현이 물질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회화의 경계를 확장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2부: 도시화와 기하학적 추상(1967–1970)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하종현은 도시화와 경제 성장이 가져온 사회적 변화를 작업의 주제로 삼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시계획백서〉 연작은 제2차 경제개발계획(1967–1971)으로 인한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구조적 형태로 추상화하였다. 하종현은 도시의 형성과 변화를 강렬한 색채와 반복적인 패턴으로 시각화하며,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적 경관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비슷한 시기에 작업한 〈탄생〉 연작은 단청 문양과 색조, 돗자리 직조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전통적 미학과 현대적 조형 언어의 조화로운 융합 가능성을 탐구했다. 하종현은 캔버스를 오려 붙이거나, 캔버스 하단을 구부리는 방식으로 회화의 고정된 형식을 넘어서는 실험을 지속했다. 〈도시계획백서〉와 〈탄생〉연작은 근대화로 인해 소멸해 가는 전통과 새롭게 형성되는 근대화적 구조라는 상반된 두 요소를 동시에 보여준다.

3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새로운 미술 운동 시기 (1969–1974)
69년, 하종현은 비평가 이일 등 총 12명의 작가와 이론가로 구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 (AG)를 결성하며 미학적, 철학적 교류를 넓히고 작업의 영역을 확장했다. AG는 당시 한국 현대미술에서 실험적 작업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함께 협회지를 발간하고 전시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 하종현은 철망을 비롯해 신문, 석고, 스프링 등 한국 사회를 반영하는 다양한 일상적 재료를 사용한 실험적인 작업을 통해 당시의 경직된 사회와 언론 검열, 사회적 억압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도면으로만 남아 있는 거울 설치 작업 〈작품〉(1970)을 재현하여 AG의 첫 전시였던 《70년 AG전》(1970) 이후 최초로 공개한다. 이 작품은 여러 개의 거울과 두개골 및 골반 엑스레이 필름을 재료로 활용해 전위적인 설치 형식을 시도한 작업이다.

4부: 접합—배압법 (1974–1975)
하종현은 1974년 “입체 실험에서 얻은 효과를 평면에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접합〉 연작을 시작했다. 작가는 올이 성긴 마대자루를 캔버스로 활용하여 캔버스 뒷면에 물감을 듬뿍 바른 후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밀어내는 독창적인 제작 기법인 ‘배압법’을 고안했다. 이 기법은 뒷면에서 시작된 작업의 결과물이 앞면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직조된 마대자루 표면을 투과해 흘러나온 물감이 입체적인 텍스처와 깊이를 형성하는 작업 방식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작가의 신체적 행위와 물질성이 결합된 결과물로서 나타난다. 〈접합〉 연작은 회화가 가진 매체적 한계를 넘어 평면적 구성과 입체적 실험의 경계를 탐구하려는 하종현의 지속적인 시도에서 탄생했다. 2010년부터는 〈이후 접합〉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전개하며 현재까지도 하종현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주요 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종현 5975》는 하종현의 초기 작업 세계를 시대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탐구하며, 그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조형 언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조명한다. 한가지 방법론에 안주하지 않았던 하종현의 작업은 그가 경험한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성장했다. 사라져가는 전통에 대한 탐구,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대한 성찰, 일상의 재료를 사용한 새로운 조형 언어 연구, 물질에 대한 실험을 통해 평면적 회화를 넘어서려는 시도 등 초기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하종현의 실험 정신이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담긴 시대적 메시지와 물성의 탐구를 직접 들여다보며 그가 남긴 시간의 흔적과 재료의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소개
하종현(b. 1935)
하종현은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2006)을 역임했다. 그는 재료와 물질성에 대한 실험을 꾸준히 이어가며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해 왔다. 특히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을 두껍게 밀어 넣는 기법과 그 위를 쓸어내고, 긁어내는 행위를 통해 흔적을 남긴다. 2010년대 이후 그는 다양한 색채와 거울, 천 등 새로운 재료를 활용하며 초기 실험정신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하종현의 작업은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으로 소개되었으며, 주요 미술관 개인전으로는 대전시립미술관(2020), 국립현대미술관(2012), 가나아트센터(2008), 경남도립미술관(2004) 등이 있다. 뉴욕 솔로몬 R.구겐하임미술관(2023), 덴버박물관(2023), 뉴욕 현대미술관(2019), 상하이 유즈미술관(2017), 브루클린미술관(2017), 타이중현대미술관(2012), 프라하비엔날레(2009)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작가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뉴욕 솔로몬R.구겐하임미술관, 시카고미술관, 도쿄도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간
2025. 2. 14. – 4. 20.
장소
아트선재센터 스페이스1, 스페이스2
참여작가
하종현
기획
김선정(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
협력
조희현(아트선재센터 전시팀장)
진행

남서원(아트선재센터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자료조사

이지연(에이프로젝트 컴퍼니 에디터), 최수영(스페이스 포 컨템포러리 아트 대표이사)

주최

아트선재센터

후원

국제예술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