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러스트: 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
2012. 6. 23. – 8. 12.
아트선재센터
원더러스트: 또 다른 언덕 너머로 가는 끊임없는 여정
《원더러스트》는 벨기에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전시 프로젝트로, 브뤼셀 자유대학의 한스 드 울프 교수가 사무소와의 협업 하에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20세기 서양 미술사의 거장 마르셀 브로타에스(1924-1976)와 파나마렌코(1940-)를 포함한 다섯 명의 벨기에 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인다.
‘원더러스트(Wanderlust)’는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문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접해보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뿌리 깊은 열망을 지칭하는 독일어이다. 이 단어가 독일어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9세기 초부터이다. 당시 독일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합리주의, 계몽주의 시대의 유산에 맞서 투쟁하면서 ‘원더러스트’를 자신들의 주요 개념적 무기로 삼았다.
예를 들어, 프란시스 알리스를 멕시코 시티로 가게 한 것은 바로 원더러스트였다. 그는 2012 카셀 도큐멘타에 출품한 작품에서처럼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열악한 곳에서 작업하고 있지만, 멕시코는 그에게 피난처와 같은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영감을 주는 곳이다. 그의 드로잉을 통해서도 알려졌듯이, 멕시코에서는 모든 것이 무탈하며, 심지어 – 최소한 그가 ‘산보’를 하는 동안에는 – 안녕하기까지 하다. 산보는 알리스에게 주로 생각의 지평을 열게 하는 조건으로, 작가는 산보하면서 주변에 널린, 그러나 이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시적 감흥에 접근한다. 또다른 작가 호노레도 역시 산보에 대한 알리스의 작가적 이해와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있던1999년 호노레도와 알리스는 각기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같은 날 베니스에 도착한 후, 대형 튜바의 위, 아래 반쪽씩을 가지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3일 동안 걷기도 했다.
본 전시에서 호노레도는 전시 포스터 이미지로도 사용된, 장대한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플라스틱 판자로 만들어져 물 위에 설치된 보행자 도로는 흐르는 강 저편에 도달하고 싶다는 욕망을 의미하며, 심리적으로 원더러스트를 연상시킨다. 또한 이 작품은 “물 위를 걷는다”는 차원에서 개인의 신념을 의미하는 유럽 기독교 전통에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파나마렌코의 천재적 발명도 간과할 수 없다. 파나마렌코는 지난 40여 년 동안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인류 역사에서 실현되지 않았으나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비범한 발명품이 되었을 뻔한 기계 장치들을 고안해 냈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파나마렌코의 로봇 공학과 설계도 및 도안을 선보인다.
《원더러스트》전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통해 현재에 겪는 사회적 억압과 부조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여행의 필요성을 경험하게 한다. 마르셀 브로타에스의 <겨울정원(Jardin d’hiver)>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겨울정원>은 토종 야자나무, 소박한 야외 정원용 의자, 백과사전에 삽화로 실린 이국풍의 조류 그림 등을 설치하고, 영화와 멜랑꼴리한 음악이 작품에 동반된다. 결국 이 작품은 중개자로서 예술가가 처한 어려운 위치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브로타에스의 설치 작업은 당시 유럽 작가들에게, 이후 지금까지도 몇 세대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브로타에스와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죠엘 투엘링스는 인간의 생각과 환경을 연결하는 기본 원칙을 구성하고자 한다. 작가의 중요한 작업 시스템(강박관념) 두 가지, 즉 돌과 새가 동시에 전시되는데, 돌과 새는 세상을 탐사하기 위한 두 개의 각기 다른 도구를 대표한다.
《원더러스트》는 다섯 명의 벨기에 작가의 작품 외에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과 보에티(Alighiero Fabrizio Boetti, 1940-1994)의 작품,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스턴(Laurence Sterne, 1713-1768), 클레브니코프(Velimir Khlebnikov, 1885-1922)에 관한 문서가 함께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