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
2024. 5. 24. – 6. 30.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
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
아트선재센터는 2024년 5월 24일부터 6월 30일까지 1층, 더그라운드에서 알레고리적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 우정수의 개인전, 《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를 개최한다.
우정수는 유럽 중세 출판물의 삽화, 유럽 미술사의 주요 회화, 대중소설이나 만화의 캐릭터 등 다양한 시대의 시각 이미지와 서사를 참고하여, 이들의 맥락과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는 유럽 중세 문학과 미술에서부터 동시대 하위문화 중 하나인 고스(Goth)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와 그림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동시대인의 불안과 우울, 욕망과 도전, 공포와 좌절, 실패와 승리 등을 알레고리적으로 재구축하여, 새로운 이미지 서사의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작가의 도전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이번 전시, 《우정수: 머리맡에 세 악마》는 작가가 직접 겪고 있는 불면증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불면증 환자 70만 시대라는 최근 언론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동시대 한국인은 잠을 못 이루고 있다. 동시대인의 불안, 우울, 스트레스, 트라우마 등은 우리를 불면의 밤으로 이끌고, 사회를 신경쇠약 직전의 장소로 변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불면과 우울에 고통받기 보다 이를 탐구하기로 결정하고, 여러가지 문헌과 시각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 중세의 어느 기사가 ‘머리맡에 세 악마’로 인해 오랜 세월 불면증에 시달리다 캔터베리 대성당의 수도사를 만나 기적적으로 치유됐다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동시대인의 우울과 불면에 대한 작가의 알레고리적 분석의 결과물로서, 〈머리맡에 세 악마〉 연작과 〈미스터 페인터 #1〉(2024)를 선보인다.
〈머리맡에 세 악마〉(2023–2024)는 불면증으로 밤을 지새우며 꾸는 꿈처럼 파편적인 이미지 시퀀스를 보여준다. 10개의 캔버스가 2열로 나란히 배열되어 하나의 거대한 화면을 구성하지만, 그 큰 화면은 각각 캔버스의 프레임이 구획하는 화면 구성과 작가가 임의로 구획한 화면 구성이 겹쳐 있다. 작가는 이렇게 중첩된 화면 구성에서, 자신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 페인터’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
먼저 독립적인 작업으로도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미스터 페인터의 인생 유전이 화면에서 파편적으로 펼쳐진다. 그는 이젤 앞에서 열심히 작업하기도 하며, 성공을 위해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곳에 도달하는 듯하지만, 실패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순간, 악마의 유혹에 솔깃한다. 미스터 페인터의 이러한 모습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러한 미스터 페인터의 에피소드들이 화면에 파편적으로 펼쳐진다. 한편 악마는 화면 곳곳에 출현하여, 각 장면을 바라보기도 하고, 우리를 주목하기도 한다. 그리고 각색된 괴테의 파우스트 속 삽화, 고야의 블랙 회화의 장면 등이 배경처럼 거대한 화면에 파편적으로 펼쳐진다. 이렇게 희화화되고 과장된 역사적 그림들 속 장면의 파편들은 미스터 페인터의 인생유전을 보조하기도 하지만, 한편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구성하여, 화면 속에서 이야기들이 무한히 발생하는 효과를 만들어 낸다. 이로서 욕망과 실패, 좌절과 승리의 무한반복이라는 삶의 악마적 순환고리가 화면 속에서 작동된다.
흥미로운 것은 맥주잔을 들고 있는 캐릭터다. 미스터 페인터, 악마, 작가가 차용한 역사적 회화의 캐릭터들이 소란스럽지만 코믹하게 화면 속에서 자신의 사건들을 만든다면, 이 캐릭터는 화면 곳곳에 있는듯 없는듯 무심히 정면을 응시하면서 일종의 맥거핀인 양 거품 넘치는 맥주잔을 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캐릭터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이 전시가 제공하는 또다른 흥미거리이다.
아트선재센터는 미술시장의 성장과 더불어 폭발하는 회화 붐 속에서 새로운 알레고리적 회화의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모색하는 젊은 작가, 우정수를 초대한다. 우정수는 ‘하나하나 연결된 선들이 이미지와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고 말하며, 자신의 작업은 ‘선으로부터 비롯된 회화’라고 설명한 바 있다. 선은 면이 되고, 면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며, 색을 끌어들여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그림들이 된다. 끊임없는 드로잉과 시각 문화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통해서 우정수는 동시대 사회의 병리적 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는 불면의 상태에 대한 알레고리를 이번 전시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한다. 회화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알레고리적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동시대 사회문화의 신경증적 현상들에 대한 냉소적 풍자를 생산해내는 작가의 이러한 도전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 소개
우정수(b. 1986)
우정수는 다양한 시대의 삽화와 신화, 서사극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넘나 들며 채집한 서사와 이미지를 통해 자신만의 화면을 재구성한다. 작가는 역사적 맥락을 벗어난 이미지의 이면을 주제로 거침없고 자유로운 붓의 움직임과 판화기법을 혼용한 특유의 드로잉을 기반으로 냉소적이지만 유머러스하게 오늘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 《Palindrome》(BB&M, 2022), 《Where Is My Voice》(두산갤러리 서울, 2020), 《Tit for Tat》(두산갤러리 뉴욕, 2020), 《Calm the Storm》(금호미술관, 2018) 등이 있으며,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제주비엔날레, 2022), 《젊은 모색 2021》(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1),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일민미술관, 2021), 《강박²》(서울시립미술관, 2019), 《상상된 경계들》(광주비엔날레, 2018)등 국내외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예인(아트선재센터 큐레토리얼 어시스턴트)
아트선재센터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BB&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