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석: 평범한 이방인
2011. 04. 09. – 05. 01.
아트선재센터 2층
김홍석: 평범한 이방인
김홍석은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구성하는 텍스트로부터 시작하여, 사회, 정치, 문화적 현상들을 번역하거나 차용하여 재배열한다. 작가는 조각, 설치, 영상, 회화, 드로잉, 퍼포먼스 등과 같은 다양한 미술 매체를 다루는 동시에 수행적 미술의 완성을 위해 협업적 체계를 구성하여 작업해 왔다. 이번 개인전에서 김홍석은 관람객 참여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데, 작품에 참여하는 퍼포머들이 주체가 되어 관람객을 자연스럽게 작품에 개입시킨다. 이 작품은 어떠한 미술적 오브제도 전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질 <사람 객관적-평범한 예술에 대해(People Objective-Of Ordinary Art)>(2011)는 작가에 의해 쓰여진 텍스트(text)가 퍼포머의 말(language)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되는 작품이다. 김홍석은 의자, 돌, 물, 사람, 개념이라는 다섯 가지 단어를 선택하여 그것들을 미술로 전환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미술화 과정은 작가의 글쓰기로 시작되어 「의자-도구에 대한 소고」, 「돌-순수한 물질에 대한 소고」, 「물-형태화될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소고」, 「사람-윤리적 태도에 대한 소고」, 「개념-표현에 대한 소고」가 작성되었다. 다섯 가지의 글은 다섯 명의 퍼포머들에게 전달되고, 작가는 이들과 텍스트의 내용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퍼포머들은 각각의 텍스트를 관람객에게 구두로 설명하는데, 내용은 텍스트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퍼포머의 이해에 따라 가변적이다. 김홍석은 암기에 의한 설명보다는 작가와 퍼포머 간의 대화가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작가가 제시한 작품은 이 대화의 지점에서 완성되고, 그 이후의 단계는 작가가 개입할 수 없는 다른 이들에 의한 새로운 내러티브이자 또 다른 작품이 된다. 김홍석이 그간 전개해 온 일련의 퍼포먼스 작품에는 ‘차이와 윤리’라는 주제가 항상 내포되어 왔으며, <사람 객관적>에서는 참여자인 퍼포머의 극대화된 역할과 작가의 윤리적 정치성이 전면적으로 부각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미술가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축소시켜 원작에 대한 퍼포머의 이해와 해석이 수용자인 관람객들과의 대화를 통해 완성될 수 있음을 제시한다. 전시장에서 들리는 말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며, 퍼포머와 관람객의 만남이 보다 주된 요소가 된다.
“연기자들은 마주한 관람객들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의 반응에 대응해야 함을 알게 된다. 이러한 즉흥적 대화는 원본이 가지는 고유한 의미를 완전히 소외시키며 새로운 텍스트를 발생시킨다. 여기서 우리는 어떠한 정해진 결말도 볼 수 없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작가-연기자-관람객 이러한 세 종류의 사람들이 순차적 구조로 연결되어 만남이라는 정치를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 김홍석
퍼포머들이 산발적으로 배치된 아트선재센터의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마치 예기치 않은 곳에서 이야기꾼을 만난 듯, 제 3자의 입으로 전해지는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관람객들이 전시장에서 조우하게 될 연극과도 같은 이 작품은 원작자 김홍석, 작가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해설자,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는 감상자 간의 관계와 소통 방식을 되짚어 보게 한다. 관람객은 퍼포머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질문할 수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아트선재센터는 이러한 체험의 과정을 통해 관람객에게 그 동안 미술관에서 접할 수 있었던 오브제에 의한 간접적 소통이 아닌 적극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긴밀하고 직접적인 소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 객관적>과 함께 초청자 4인의 강연으로 이루어질 “말 특정적(Language Specific)”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작가로부터 초청된 주일우(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성기완(계원디자인예술대학 사운드디자인트랙 전임강사), 심보선(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조교수)과 이태한(미디어 아티스트)은 관람객들에게 자신들이 지금까지 진행해 온 혹은 앞으로 진행하게 될 작업을 구술로 전달함으로써 ‘이야기’로 이루어진 전시장 안을 보다 풍성하게 채운다. 주일우는 ‘천동설과 지동설’, ‘진화론의 해석 문제’를 통해 과학에서의 관점의 문제를 다루고, 음악가 성기완은 ‘모듈(module)’을 소재로 강연하며, 심보선과 이태한은 여섯 명의 시인들과 함께 작업한 프로젝트 <텍스트 해상도(Text Resolution)>(2009)를 소개한다.
이번 전시작인 <사람 객관적> 및 <공공의 공백(Public Blank)>, <다름을 닮음(Assimilated Differences)> 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스테이트먼트와 스크립트, 작품의 이해를 위한 에세이, 작가와의 인터뷰, 그리고 전시에 초청된 강연자들의 원고가 수록된 책 『퍼포먼스, 윤리적 정치성(Performance, an Ethical Politics)』이 전시와 함께 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