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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만하이머와 타겟
하이디 부허(1926-1993)
안나 만하이머와 타겟
<안나 만하이머와 타겟>(1975)은 스위스 네오 아방가르드 작가인 하이디 부허(1926-1993)의 소프트 오브젝트(Soft Object) 작품이다. 부허는 여성이 사용하는 친밀한 물건들을 액상 라텍스에 담가 방부처리를 하고 납작하게 눌러 평면처럼 보이는 소프트 오브젝트, 즉 부드러운 조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방법은 특정 공간에 라텍스를 바르고 천으로 덮은 후 벗겨내는 스키닝(Skinning) 방식의 초기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안나 만하이머와 타겟>은 제목에서 작품의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안나’는 히스테리아 전문 정신과 의사인 빈스방거 박사 치료실의 환자였던 안나 O를 연상하게 하는 동시에 작가 할머니의 이름이다. ‘만하이머’는 독일어로 남성의 집을 뜻한다. 그러므로 ‘안나 만하이머’는 거시적인 의미로는 가부장적 공간에 살고 있는 모든 여성, 억압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은유한다. 또한 작업은 작가가 경험한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부허는 런던에서 첫사랑을 만났지만 연인의 부상으로 헤어지게 되었다. 작품 가운데 펼쳐진 드레스 하단에 연인과의 러브레터, 그를 만나기 위해 구입했던 기차표가 라텍스 방부 처리되어 있다. 라텍스와 자개 안료를 이용해 여성과 밀접한 물건들을 방부처리하여 여성의 시간과 기억을 콜라주하고 부조로 제작했다. 작가의 소프트 오브젝트는 억압적인 조건 속에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상징하는 동시에 억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다. (글: 천수원)
하이디 부허(1926-1993)
하이디 부허는 스위스 빈터투어 출생으로 조각, 드로잉,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실험한 스위스 여성 작가이다.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에서 공부했고 조각가 칼 부허와 결혼하여 몬트리올,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미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남편과 이혼 후 스위스로 돌아간 하이디 부허는 ‘스키닝’ 기법으로 자신만의 건축적 조각 작업을 전개했다. 취리히 정육점 지하에 자신의 스튜디오 ‘보그(Borg)’를 차리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사용하던 옷과 침구류 등을 액상 라텍스에 담가 납작하게 눌러 부조로서 제시한 ‘소프트 오브젝트’를 통해 부허는 자신만의 조각 언어를 실험했다. 그의 관심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되고 사회적 억압과 위계에 대한 도전, 해방과 자립을 모색했다. 하이디 부허는 1993년 스위스 브레넨에서 작고 후 스위스 취리히의 《Heidi Bucher – Mother of Pearl》(미그로스 현대미술관, 2004) 전시를 시작으로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됐고 독일 뮌헨의 《Retrospective Exhibition, Metamorphosen》(하우스데쿤스트, 2021) 회고전으로 관심을 받았다. 2023년 아트선재센터의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Heidi Bucher: Spaces are Shells, are Skins, 2023.3.28.- 6.25.)에서 아시아 최초 회고전으로 재조명되었고 이후 이 전시는 중국 베이징의 《Heidi Bucher: Beyond the Skins》(레드브릭 미술관, 2023.8.5.- 2024.1.21.)과 필리핀 마닐라의 《Heidi Bucher: and Pull Yesterday into Today》(현대미술디자인 미술관(MCAD), 2024.5.23.- 8.18.)로 순회 전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