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
세잔느의 무게
박모/박이소(1957-2004)
세잔느의 무게
<세잔느의 무게>(1995)는 화강암의 두꺼운 직사각형 테이블 구조에 원추, 구, 원통 모양을 반쯤 들어간 형태의 음각으로 새긴 조각이다. 그가 이 작업을 <세잔느의 무게>라 이름 붙인 이유는 세잔느가 서양 현대미술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세 도형은 각각 미술창작의 세 요소인 ’비주얼, 에너지, 콘셉트’를 의미한다. 각 단어의 영문 머리글자가 수직으로 내려다본 세 도형과 겹치며 원추의 삼각형은 V(Visual)를, 구의 동그라미는 C(Concept)를, 원추의 직사각형은 E(Energy)를 나타내는데, 옆에 붙은 영문의 스텐 레이블이 가리키는 것과 같이 세 형태는 음식의 ‘설탕, 소금, 쌀’을 은유하고 있다. 이는 미술 창작을 먹고 사는 일과 다름없다고 여기며 음식의 재료들을 동원하거나 동양/서양, 전통/현대, 중심/주변으로 이분된 조건을 혼종시키는 뉴욕 시기의 작업과 연관된다. 움푹 들어간 모양과 관련해 박모는 “서양현대미술의 상징이 테이블(나 또는 한국)에 새겨져, 보이지 않는 무게(Negative Space의 중량)를 각인함”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이는 서양의 미술창작 요소가 한국미술에 보이지 않게 각인되는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시기의 작업과도 연결된다. <세잔느의 무게>는 작가가 뉴욕에서 귀국한 해인 1995년, 지금의 아트선재센터가 건축되기 전 한옥 터에서 진행됐던 《싹》(1995. 5. 19. – 8. 20.)을 위해 제작 및 전시되었다. (글: 이예인)
박모/박이소(1957-2004)
박모/박이소의 작업은 뉴욕과 한국 시기로 구분된다. 뉴욕 시절에는 제3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 소수자성, 동양적인 것을 고민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귀국 이후에는 이질적이거나 양가적인 요소를 유희적으로 중첩시키는 특유의 방법을 한결같이 작동시키되, 도시 속 구조를 작업으로 편입시키는 설치미술의 새로운 문법을 고안했다. 1982년 프랫 인스티튜트로 유학을 떠나, 1984년 선보인 퍼포먼스 〈추수감사절 이후 박모의 단식〉을 기점으로 박모로 활동했고, 1998년부터는 박이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작가 활동 이외에도 1985년 뉴욕에서 샘 빙클리와 함께 브루클린에 대안공간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를 설립해 1989년까지 운영했고, 미술비평연구회 활동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에도 일조했다. 작고 이후 개최된 네 번의 개인전으로 《탈속의 코미디: 박이소 유작전》(로댕갤러리, 2006), 《박이소: 개념의 여정》(아트선재센터, 2011. 8. 20. – 10. 23.)과 《박이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한 어떤 것》(아트선재센터, 2014. 4. 19 – 6. 1.) 그리고 《박이소: 기록과 기억》(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