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시

이세득

1999. 5. 24. – 7. 4.

아트선재센터

이세득

한국 현대미술의 산증인인 이세득의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이세득의 화가로서의 일생을 정리하는 회고전인만큼 초기의 사실적인 작업에서부터 근래의 추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그의 화력을 일괄할 수 있는 다양한 작업들이 전시된다.

20세기의 모더니즘이 걸어온 길을 함께 걸어온 작가 이세득은 우리의 미감과 전통을 서구적 조형언어와 조화시키고자 노력했던 화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회화의 영역뿐 아니라 그 이외의 분야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던 그의 활동은 오히려 그를 “작가 이세득”으로서보다는 “예술행정가 이세득”으로 부각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이세득은 지금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작업하는 부지런한 작가이며, 따라서 이세득을 향한 우리의 시선은 그의 활동이 아닌 작업 자체를 추적해야 할 것이다. 구상과 비구상의 시기를 거쳐 1980년대 후반 이후 근작에 이르기까지 추상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는 이세득의 작품들이 5기로 나뉘어 전시되는 이번 회고전은 이러한 시도의 출발선상에 위치한다.

이세득의 작품을 형식적으로 구별한다면 구상과 비구상의 시기를 거쳐 1980년대 후반 이후 근작에 이르기까지 추상적인 작업들로 대략 5기로 나뉘어 볼 수 있는데 3층에서는 1975년까지 초기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되는 작품 중 가장 시기가 앞서는 <자화상>(1942)은 고전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인물을 그렸던 학창시절의 화풍을 짐작하게 해주는 유일한 작품이다. 샤반느와 보티첼리, 드가에 심취했던 초기의 인물화에 정물과 풍경이 도입되면서 차츰 그의 화면은 비대상으로 변화해간다. 이 시기는 그가 브라크와 마티스에 한창 심취했을 무렵인 1957~58년경으로, 분할되고 단순화된 화면을 보여주는 <하오의 테라스>(1958)나 <구성>(1959)에는 이러한 영향이 잘 드러나고 있다. 추상의 열풍에 휩싸인 파리에서 작업하면서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세득은 한국의 정신, 한국적 요소로서 고구려 벽화와 신라 토기의 질감과 조형성에 주목하게 되며, 이러한 요소들은 <주(宙)>(1967), <고화(古話) 72-E>(1972) 등의 작품을 통해 1970년대 초까지 그의 화면을 지배하게 된다.

1976년 이후 근작에 이르기까지 이세득은 서정적 추상의 공간을 펼쳐보인다. 귀국 후, 고건축에 흥미를 가지게 되면서 발견한 탱화와 단청의 이미지 역시 그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한국적인 요소이다. 탱화와 단청의 색채와 이미지는 <열반(涅槃)>, <전설기(傳說期)> 등 1980년대 초에 제작된 일련의 연작들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1980년대 후반, 1990년대가 되면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사라지기 시작하며, 이것을 대체한 것은 옛 창호를 연상시키는 추상공간이었다. 작가의 언급대로, 창호의 이미지는 전통적인 공간 혹은 우주 공간의 개념과도 상통하는 것으로, 자연의 모습이나 사물의 형태가 화면에 드러나던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점차 화면은 이러한 공간 속에서 유동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이세득의 작업을 특징짓는 ‘서정적 추상공간’이라는 표현은 이 시기의 작업을 지칭하는 평론가 이경성의 용어이다. 자연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근본적인 조형요소인 점과 선, 그리고 면으로 귀결되며, 여기에 색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결부되어 결국에는 무한한 조형미를 보여주는 순수추상의 화면에 이르게된다. 1980년대 후반 <심상(心象)> 시리즈 이후 최근의 작업에서는 감각적인 색채마저 배제하여 절제된 화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자신이 추구해온 서정적 세계를 보다 정신적으로 심화시키려는 작가의 또 다른 시도로 읽혀진다.

이번 회고전은 초기 해외 유학을 통해 모더니즘을 한국에 도입하고 이를 한국적인 미감으로 소화하여 우리적인 것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이세득의 작가로서의 면모를 그의 작품들을 통해 다시 발견하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기간
1999. 5. 24. – 7. 4.
장소
아트선재센터
참여작가
이세득
기획
아트선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