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시

육근병: 생존은 역사다

2018. 6. 15. – 8. 5.

육근병: 생존은 역사다

사람에게는 눈이 있다.
눈의 목적은 보는 것이지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 눈을 보이게 함으로써 대립이 없어진다.
눈은 역사의식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음과 양의 대립, 즉 전통과 현대를 잇는 ‘눈’이
상반된 개념을 하나로 만든다.
보는 눈과 보이는 눈이 서로 교차되면서
삶, 죽음,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다.
그저 아이들의 해맑은 눈을 바라보라.
그 어떤 질문이나 대답이 필요하겠는가?

(작가 노트 중)[1]

중견작가 육근병의 개인전 «생존은 역사다»는 세상을 응시하는 눈과 교차하는 시선을 매개로 삶의 본질과 세계의 근원적 문제를 탐구한다. 1980년대 후반 비디오와 설치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는 지난 30여 년 간 끊임없이 ‘눈’을 모티브로 역사에의 응시, 타자와의 대화, 삶과 죽음의 연결을 이야기해 왔다. 특히 무덤이라는 전통적 형식에 새로운 미디어를 결합하여 역사, 삶과 죽음과 같은 인류학적인 문제를 풀어보고자 했다.

전시장 2층의 12채널 비디오 설치 <십이지신상>은 세계 근대사를 이끈 열두 명의 인물의 초상을 담고 있다. 이 인물들의 영상을 배경으로 서서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깜빡이는 눈들은 세계 속의 나를 자각하게 하고 역사와 나의 관계를 사유하게 한다. 원형으로 배치된 열두 개의 스크린을 통해 한 세기의 시간이 수평으로 지나가고, 여기에 태중에 놓인 어린아이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면서 태고의 시간, 인간 근원의 시간을 연결한다.

3층에는 작가의 대표작인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이 새로운 구성으로 설치된다. 흙으로 덮인 무덤 속에 살아 움직이는 눈의 형태로 된 이 설치 작품은 삶과 죽음이 영속되는 세계를 포함하고 있다. 무덤은 죽은 자의 공간으로 개인의 역사를 상징한다. 평론가 오구라 타다시는 “육근병은 감히 사람 같아 보이는 무덤을 만든다. 그 무덤은 원만하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듯한 형태를 취한다. 무덤의 형태는 그 속에서 잠자는 죽은 자의 모습을 상기시키는 것이어야 하지만, 육근병이 만든 무덤은 살아 있는 인간처럼 취급된다.”[2]고 언급하면서 끊임없는 응시의 시선이 포함된 육근병의 무덤을 죽음과 생이 연결된 상태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는 무덤의 재료인 흙이 인간 신체의 회귀이자 재생이라는 지점과도 연결된다.

1989년 처음 시작한 이 작업으로 작가는 1992년 독일의 카셀도큐멘타에 참여한다. 카셀의 프리데리치아눔 미술관 앞 광장에 설치한 <풍경의 소리 + 터를 위한 눈 = 랑데부>는 그 과감한 구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광장 한 가운데에 부풀어 오른 흙무덤 봉분을 세우고 그와 마주한 빌딩 입구에는 대형 원주를 세운 후 각각 그 안에 움직이는 눈의 영상을 설치하여 각각 ‘동양의 눈’과 ‘서양의 눈’이라고 명명한 이 작품은 거대한 서사를 다루는 육근병의 과감한 작업 방식을 드러내었다. 이번 전시에는 카셀도큐멘타의 설치를 기록한 드로잉과, 1995년 리옹비엔날레에 설치되었던 <생존은 역사다>의 설치 드로잉 그리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가 새로 제작한 드로잉을 함께 배치한다. 3층 전시장의 한 켠 테이블 위에 놓인 <시간 속의 시간>은 <생존은 역사다>라는 작품과 연결된 시리즈이다. 육면체의 상자 속에 담긴 일련의 이미지는 근현대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드러난 전쟁과 재난을 비롯한 세계의 온갖 사건과 비극의 장면을 담고 있고 그것을 생산하고 지켜보는 사람의 눈을 재확인시킨다.

작가 이우환은 육근병의 작업에 대해 “공동체의 죽음의 선언, 자기를 자기의 외부에 서게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 그것은 무엇보다도 크게 느껴지는 우주의 시점을 찾으며 근대를 뛰어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리라.”[3]라고 평했다. 실로 접근이 쉽지 않은 거대한 질문을 30여 년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도전해 온 것은 “예술이 생명의 기본인 바람이며 예술의 기능과 목적은 바람처럼 존재하여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라는 작가의 굳건한 의지에 기인한다.

[1]『EYE』, 육근병 저, 넥서스, 2016, p.17

[2] 오구라 타다시, 「그 무덤의 눈은 미묘하게 움직인다」, 같은 책, p.26

[3] 이우환, 「위화違和의 장場」, 같은 책, p.174


작가 소개

육근병(b.1957)
육근병은 1990년대 초부터 비디오 설치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작가이다. 그는 하나의 눈이 깜박이는 이미지를 기반으로 주체와 대상, 동과 서, 전통과 현대를 가로지르는 세계에 대한 성찰을 작업으로 소개해왔다. 작가는 드로잉과 페인팅, 퍼포먼스, 오디오 비주얼 설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오고 있다. 1992년 카셀도큐멘타와 1995년 리옹비엔날레에 초대되었고, 도쿄, 오사카, 삿포로 3개 도시에서 동시 개최한 《일본 프로젝트》(1993)를 시작으로 기린플라자오사카(1994), 도쿄 갤러리큐(2003) 등 일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국내에서는 개인전 《생존을 위한 꿈》(1998, 국제갤러리), 《비디오크라시》(2012, 일민미술관)를 비롯하여 부산비엔날레(2014, 2016) 등에 참가하며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오프닝
2018.6.14 (목) 18:00

기간
2018. 6. 15. – 8. 5.
참여작가
육근병
주최
아트선재센터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